주한미군 감축 검토, 한국 안보 딜레마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4,500명의 인도태평양 지역 재배치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안보 환경이 중대한 전환점에 직면했다. 표면적으로는 병력 이동이지만, 그 이면에는 변화하는 동북아 지정학과 한국이 마주한 복합적 안보 딜레마가 숨어있다.
70년 동맹의 균열인가, 전략 재편인가
한국 외교부가 "주한미군 철수 관련 한미간 논의된 사항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지만, 미국 내부에서 이런 검토가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70여 년간 한반도 안정의 핵심축이었던 주한미군의 위상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고민은 분명하다. 대중국 견제라는 새로운 전략적 우선순위와 동맹국의 비용 분담 압박 사이에서 최적의 배치를 찾아야 한다. 괌과 같은 전략적 거점으로의 병력 이동은 중국이 접근하기 어려우면서도 인도태평양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합리적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한국이 직면한 3중 안보 딜레마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이번 논의는 3중의 안보 딜레마를 제기한다.
첫째, 북한 억제력의 공백이다. "주한미군을 줄이거나 철수하면 북한의 침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한 재래식 억제력이 약화되면, 한국은 더 큰 군사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둘째, 지역 내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다. 주한미군 철수는 "중국, 러시아, 북한의 득세를 불러오게 된다"는 분석처럼, 한반도가 미중 경쟁의 최전선에서 중국 쪽으로 기울어질 위험이 있다.
셋째, 동맹의 신뢰성 훼손이다. 미국이 한국을 '중국 견제용 전진기지'로만 활용하려 한다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은 더욱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
이 상황은 한국에게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미군 주둔에만 의존하는 안보 체계를 유지할 것인가?
엘브리지 콜비 국방차관의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한 재래식 방어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격적이지만, 어쩌면 현실적이다.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고려할 때 더 주도적인 방어 역할을 담당할 역량은 충분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되기 전에 한국이 독자적 억제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핵잠수함, 사드 시스템, 킬체인 같은 전략무기 확보와 더불어 한미동맹의 새로운 역할 분담 방식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결국 이번 논란은 한국 안보 정책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실질적 안보를 확보하는 '전략적 자립'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동맹은 유지하되, 그 형태와 내용은 21세기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