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회 할말이슈] 우려되는 부작용

기사에서 본 '임차인 면접제'의 부작용

 

표면적으로는 악성 임차인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실제로 제도화될 경우 우려되는 부작용들이 상당합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문제는 차별의 제도화입니다. 청원에서 제시한 범죄기록회보서, 신용정보조회서 같은 서류는 결국 과거의 실수나 불운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을 배제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전과자라고 해서 모두 위험한 것도 아니고, 신용불량자라고 해서 모두 월세를 안 내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낙인으로 주거권 자체를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정보 비대칭의 심화도 문제입니다. 기사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정보 비대칭을 언급하지만, 이 청원은 오히려 그 불균형을 극단적으로 확대합니다. 임차인의 모든 개인정보가 임대인에게 넘어가는데,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습니다. 수많은 집주인들에게 내 범죄기록, 가족관계, 세금 납부 내역까지 제출해야 한다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은 어마어마하게 커집니다.

 

6개월 인턴기간이라는 표현도 충격적입니다. 임대차 계약을 취업에 빗대는 이 발상은 주거를 인간의 기본권이 아니라 '얻어야 하는 특권'으로 전락시킵니다. 이미 보증금과 월세로 경제적 부담이 큰데, 시험 기간까지 거쳐야 한다는 건 세입자를 2등 시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배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청년 1인 가구, 한부모 가정, 저소득층, 이주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서류상 조건이 불리한 사람들은 아예 주거시장에서 밀려날 것입니다. "내 집에 전과자 살면 어떡해"라는 청원인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쉽게 변질될 수 있습니다.

 

임대차 시장의 거래비용 폭증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집 한 곳 구하려면 여러 서류를 발급받고, 면접 준비하고, 6개월 동안 임시 거주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이동이 잦은 청년층이나 직장 때문에 이사가 잦은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스템입니다.

 

독일·미국·프랑스의 사례를 오해하고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그 나라들에서 신용조회나 소득증명이 있는 건 맞지만, 동시에 강력한 임차인 보호법, 임대료 규제, 차별금지법이 함께 작동합니다. 제도의 일부만 가져와서 한국에 적용하면 부작용만 극대화될 것입니다.

 

악성 임차인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불안정한 주거 시스템, 치솟는 전월세 가격, 부실한 분쟁 해결 구조입니다. 세입자를 검증하는 게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전월세 상한제를 제대로 운영하고, 임대차 분쟁 조정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진짜 해법입니다.

 

결국 이 청원은 임대인의 불안을 이용해 임차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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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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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국
    뭐든 처음엔 헤쳐 나가야할게 많기는 하지요. 뭐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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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도#DWAE
    복잡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