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회 할말이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끝나는가

 

“수백 번의 연락이 ‘징후’였을 때, 제도는 무엇을 했나”

 

스토킹은 범죄다. 그리고 이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더 이상 울산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난 28일 울산의 병원 주차장에서 벌어진 교제폭력·스토킹 살인미수 사건은, 우리가 수차례 보아 온 비극의 전형적인 전주곡을 다시 밟았다. 피해자가 “그만 만나자”고 말한 뒤 시작된 반복 연락, 집 앞 방문, 흉기 위협. 경찰은 경고와 접근·통신금지의 긴급응급조치를 내렸고, 검찰은 잠정조치 13호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금지 명령은 종이 울타리였다.

 

가해자는 다시 찾아와 흉기를 휘둘렀고, 우리는 또다시 “그때 4호(유치)까지 갔어야 했나”를 묻고 있다. (사건 개요: 연속 신고와 수백 회 연락·방문, 경고 및 13호 조치 후 재범 시도). 

 

울산 사건의 6일간 168통 전화·400건 문자는 전형적인 위험 신호였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수십년간 외쳐왔고, 숫자는 오래전부터 경고음을 냈다. 

울산 사건이 던지는 질문들

울산 사건의 경과를 살펴보면, 현행 제도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피해자 B씨는 첫 번째 폭행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경찰은 가해자 A씨에게 경고 조치만 내렸다. 이후 엿새 만에 568차례의 연락 시도와 스토킹 행위가 이어졌고, 경찰은 긴급응급조치를 결정했다.

검찰은 접근금지와 통신금지는 받아들였지만, 구금 조치는 기각했다. 범죄 전력이 없고, 직장과 주거지를 옮기려 했으며, 피해자가 구금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결국 비극적 결과로 이어졌다.

피해자 중심 사고의 위험성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피해자의 의사를 지나치게 존중한 결과가 오히려 더 큰 피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 폭행에서 B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구금 조치에서도 피해자의 의사가 고려됐다. 하지만 스토킹은 가해자의 행동 패턴과 위험성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실제로 2023년 7월 개정된 스토킹처벌법에서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해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가 보복을 두려워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오히려 범죄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공백과 개선 방향

울산 사건은 현행 스토킹 대응 시스템의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첫째, 초기 대응의 미온적 성격이다. 568차례의 연락 시도는 명백히 비정상적인 행동이었지만, 이에 대한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둘째, 잠정조치의 한계다. 접근금지와 통신금지만으로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스토커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특히 흉기를 이용한 위협 행위가 있었던 만큼 구금 조치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위험성 평가 시스템의 부재다. 스토킹 행위의 빈도와 강도, 위협의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위험도를 측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

스토킹은 '애정표현의 과잉'이나 '집착'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다.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고 정신적 고통을 주며, 궁극적으로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다. 울산 사건에서 보듯 스토킹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범죄 행위다.

따라서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만 만나자'는 말에 568차례의 연락으로 응답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범죄다. 이를 '열정적인 구애'나 '진실한 사랑'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

스토킹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스토킹 전담 인력의 확충과 전문성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와 같은 인력 부족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렵다.

또한 위험성 평가 도구의 도입과 활용이 필요하다. 스토킹 행위의 빈도, 강도, 위협의 수준, 가해자의 과거 행동 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위험도를 측정하고, 이에 따른 차등적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객관적 위험성이 높을 때는 더 강력한 보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울산 사건의 피해자는 현재 중태에 빠져 있다. 568차례의 연락과 흉기 위협이라는 명백한 위험 신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한 비극이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법과 제도의 정비로,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로 응답해야 할 때다.

3 (3).png3 (4).png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