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얻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네요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취지는 분명 공감할 수 있는 문제였어요. 누구나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는 당연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방식이 누적된 피로와 반감을 키운 것도 사실이에요. 출근길을 막고, 반복되는 충돌이 이어지면서 “왜 하필 이 방식이냐”는 질문이 더 크게 남았어요. 충분히 함께 고민해 줄 수 있었던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든 지점이기도 해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좁혀버린 셈이죠.
이동권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예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같은 편에 설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처럼 불편과 갈등만 앞서는 방식은 문제의 본질보다 감정의 대립을 키우기 쉬워요. 그 순간, 정작 중요한 예산과 제도, 책임의 문제는 뒤로 밀려나게 되죠. 시선이 ‘왜 저러느냐’에 머물면, ‘무엇을 바꿔야 하느냐’는 질문은 흐려질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방향을 다시 고민할 시점이라고 봐요. 불편을 강요해서 얻는 주목보다, 공감을 통해 얻는 연대가 훨씬 오래 갑니다.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이건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 필요해요. 협의와 대화, 현실적인 개선안 제시가 함께 가야 하고요. 그래야 예산도 움직이고, 정책도 실제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시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에요. 공감을 잃은 수단은 결국 목표에도 도움이 되기 어렵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편에 설 수 있는 길을 다시 찾았으면 해요. 그게 장애인 이동권을 진짜로 앞으로 보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