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준석과 이병태는 트럼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 혼란에 빠진 한국 보수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좌표
최근 한국 보수 진영 내부에서 낯설지 않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스스로를 보수라 규정해온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 전략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이에 대해 보수 지지층은 “왜 우리 편을 공격하느냐”는 혼란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한다. 이준석 전 대표와 이병태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두 사람은 보수를 자처하지만, 트럼프와 그 지지 기반, 더 나아가 이른바 ‘윤어게인’으로 불리는 국내 보수 대중 흐름에 대해 매우 날 선 언어를 사용한다.
이 현상은 단순한 개인적 호불호나 세대 갈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 보수가 오랫동안 회피해왔던 질문, 즉 “우리는 어떤 보수인가”라는 정체성의 균열이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한국 보수의 출발점은 ‘가치’가 아니라 ‘체제’였다
미국 보수는 종교와 문명, 특히 기독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가족·생명·도덕 질서라는 가치가 정치의 핵심 언어였고, 공화당은 그 정치적 표현이었다. 반면 한국 보수는 전혀 다른 경로를 밟았다. 반공, 산업화, 국가 주도 성장, 안보와 질서 유지가 중심이었고, 이는 종교적·도덕적 보수와는 다른 ‘체제 보수’였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한국 보수는 오랫동안 “시장경제와 안보”를 말해왔지만, “어떤 문명을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서구 자유주의 엘리트 담론이었다.
보수를 자처한 채 자유주의 엘리트가 된 사람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보수 엘리트 형성 경로는 비교적 단순하다. 명문대, 해외 유학, 국제기구와 글로벌 담론의 흡수. 이 과정에서 이들이 내면화한 가치는 미국 공화당 보수가 아니라, 미국 민주당과 유럽 자유주의 엘리트의 세계관이었다. 절차, 규범, 국제법, 인권, 제도. 이들은 이를 ‘합리성’이라 불렀고, 스스로를 “구태와 선동을 거부하는 보수”로 규정했다.
이준석과 이병태는 이 계보의 전형이다. 그들의 언어는 보수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트럼프가 말하는 억지력 회복, 중국 견제, 서반구 장악, 에너지 레버리지 같은 전략적 개념보다는 “국제 규범 위반”, “제국주의 회귀”, “질서 붕괴”라는 규범적 판단으로 채워져 있다.
트럼프를 ‘전략’이 아니라 ‘일탈’로만 보려는 이유
트럼프의 대외 행보는 분명 거칠고 노골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략적 계산을 동반한 행위인지, 단순한 충동적 일탈인지는 분석의 문제다. 이준석과 이병태는 이 지점에서 분석을 멈춘다. 그들은 트럼프의 행동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곧바로 판결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의 행보를 전략으로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이들이 유지해온 “트럼피즘은 위험한 포퓰리즘”이라는 프레임이 무너진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치다. 트럼프가 전략적 지도자라면, 트럼프와 윤석열을 연결하는 상상력, 즉 ‘윤어게인’ 서사 역시 완전히 허황된 것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이준석과 이병태에게 윤어게인은 단순한 지지 흐름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담론적 입지를 위협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트럼프는 반드시 ‘보면 안 되는 전략가’가 되어야 하고, ‘규범을 파괴하는 위험한 인물’로 고정되어야 한다.
기독교·복음주의에 대한 거부감의 정체
이들이 특히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대상은 트럼프 개인보다 그의 지지 기반이다. 기독교 복음주의, 종교적 확신, 대중 신앙 정치. 이는 미국 민주당 엘리트와 유럽 자유주의가 가장 불편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종교는 비합리적이며, 도덕적 확신은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대중의 신념은 엘리트의 통제 바깥에 있다.
이준석과 이병태의 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아론”, “사대주의”, “신봉자”라는 표현은 이 불안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트럼프라는 인물이 아니라, 엘리트가 통제할 수 없는 보수 대중의 정서다.
보수의 혼란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한국 보수가 느끼는 혼란은 당연하다.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트럼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적 보수 그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준석과 이병태는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일관되고, 논리 또한 정교하다. 그러나 그것은 보수 내부의 한 분파, 즉 세속 자유주의 엘리트 보수의 시각일 뿐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그들은 보수다. 그러나 미국 공화당의 보수가 아니라, 민주당 엘리트와 닮은 보수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같은 ‘보수’라는 이름 아래 묶어온 것이 지금의 혼란을 낳았다.
한국 보수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규범과 절차를 중시하는 엘리트 자유주의 보수의 길을 갈 것인가, 문명·가치·억지력을 중시하는 대중 보수의 길을 갈 것인가. 이 질문을 회피하는 한, 이준석과 이병태의 글은 계속해서 더 강한 언어로, 더 깊은 균열을 만들어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