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회 할말이슈] 더 늦기전에

지난 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통과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한국 교육계에 늦지만 필요한 변화의 신호탄이다. 내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수업 중 스마트기기 사용이 전면 금지되는 이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되며 본회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세계 각국이 몇 년 전부터 실시해온 정책의 뒤늦은 따라잡기에 불과하다.

 

유네스코 세계교육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나 정책을 마련했다고 보고한 교육 당국의 수는 전체의 40%에 달한다. 전 세계 4개국 중 1개 국가는 법이나 정책으로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한국의 이번 조치는 선도적이라기보다는 필수불가결한 대응이었다.

 

구체적 사례들을 보면 한국의 뒤늦음이 더욱 명확해진다. 뉴질랜드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부터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2월 교내 휴대폰 사용에 대해 '교내 휴대폰 사용 금지 지침'을 발표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도 이미 유사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한국이 2025년에야 법안을 통과시키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이미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왔다.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가 그의 저서 『불안 세대』에서 제기한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하이트는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가 아이들의 뇌를 망가뜨린다고 말하며, 지금 당장 SNS와 스마트폰의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 결과, 외로움과 우울, 현실 세계에 대한 두려움, 낮은 자기 효능감에 사로잡힌 '불안 세대'가 탄생했다는 하이트의 분석은 한국 청소년들의 현실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의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이 OECD 최고 수준인 현실은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노출된 세대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하이트의 연구는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뇌 발달과 사회성 형성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을 지적한다. 특히 사춘기 뇌의 가소성이 높은 시기에 과도한 디지털 자극에 노출되면, 집중력 저하, 현실 관계 형성 능력 저하, 즉각적 보상에 대한 중독성 등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늦게 대응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IT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역설적으로 디지털 기기의 부작용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한국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기를 주저했다.

 

둘째, 사교육 산업과 결합한 에듀테크 시장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 태블릿을 활용한 디지털 수업, 온라인 강의 플랫폼 등이 교육 시장의 주요 동력이 되면서, 디지털 기기 규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셋째, 코로나19 팬데믹이 오히려 디지털 기기 의존도를 높였다. 원격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학습 도구'라는 명분을 얻었고, 이후 일상으로 복귀한 뒤에도 기기 사용 제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려웠다.

 

한국의 늦은 대응이 만들어낸 피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교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사이버불링은 기존의 학교폭력보다 더 교묘하고 지속적이다. 수업 중 스마트폰을 통한 게임, 동영상 시청, 소셜미디어 사용은 학습 집중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특히 중독성이 강한 숏폼 콘텐츠에 노출된 학생들은 긴 호흡의 사고가 필요한 학습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15초, 30초 단위로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뇌는 50분짜리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법안 통과가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경기도의 한 초등교사는 "스마트폰 사용을 법으로 금지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법령에 스마트워치 등 착용형 기기를 하나하나 나열해서 규제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법적 규제가 따라잡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금지 이후의 대안 교육이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현실 세계에서의 관계 형성 능력, 아날로그적 여가 활동 등을 통해 스마트폰 없는 시간을 건전하게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한국의 이번 조치는 뒤늦었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중요한 것은 이 법안이 단순한 금지 조치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교육 혁신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조나단 하이트가 강조했듯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상 세계의 과도한 자극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의 의미 있는 도전과 성장 경험이다. 스마트폰이 사라진 교실에서 학생들이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집중해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세계는 이미 '포스트 스마트폰 교육'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따라잡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한국형 디지털 웰빙 교육 모델을 만들어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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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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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9297
    동의합니다. 금지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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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히
    중이에요. 본질을 집중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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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SIS
    휴대폰 없는 교실은 학생들이 주어진 과제에 더 몰입하도록 만드는 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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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큐민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고 봐요
    이렇게라도 해야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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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
    아이들이 스마트폰 중독 증세가 심해지기 전에 학교에서 자제시켜주는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