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다닐 땐 평범한게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어른들이 으래 뛰어나거나 차별화 된 삶을 강조하셨기에 비슷한 걸음으로 나이를 먹는것이 비루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면서 아웃스탠딩보단 오디너리가 가장 힘들다는걸 깨닫게 됐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 받으며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출신 대학교가 그리고 스펙의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더라구요.
구직하면서 새롭게 사회의 발을 디디기 시작하는 새싹을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하고 쉽게 쓰고 버릴지 고민하는 회사들을 보면서 제일 먼저 말문이 막히고
이런 곳이라도 들어가보겠다며 아등바등 이력서를 넣는 제 자신이 너무 속상하더랍니다.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나.. 회의감도 몰려오고.
그렇게 첫직장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 마구 뛰는 심장을 애써 감추고 광대가 저릿하게 웃으면서 지냈는데
직속 상사가 절 싫어했어요.
왜냐면 고객이 뚱뚱한 분(직속상사) 말고 날씬한 그 분 (저)라고 불렀던 일을 계기로 시작하여 다른 손님도 절 선호한 것으로 끝을 달렸습니다.
그렇게 직장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애써 무마하고 싶은 회사는 정신과 진료이력을 숨겼다는 이유로 강제 해고를 협박하기에 이르고, 그렇게 전 제 발로 나오게 됬습니다.
아 왜냐면 절 괴롭히던 상사가 제 진료이력을 소문내고 정신병자로 둔갑시켜 평판을 안좋게했거든요. 물론 고객들은 모르니까 절 좋아했구요.
뭐 그렇게 첫직장에서 팽 당하고 실업급여도 못받는 상황에서 너무 힘들어 혼자 여행을 다니다가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해달라고 스카웃 됐습니다.
친화력이 좀 좋은 편이라
거기서는 시간이 지나고 사장이 절 좋아하게 됐었나봐요. 전 그렇지 못했어서 여러 일들을 거쳐 사장이 술마시고 제게 의자를 집어던지는 개판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아직도 이성에 대한 혐오가 있어요.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친해져 스텝으로 있을 때는 손님도 아닌데 찾아오는 진상 군식구에게 그러지말라고 했다가 또 그렇게 이방인 취급을 당하면서 나오게 됐구요.
물론 이때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좋았습니다.
사람에 대해 아주 혹독하게 배웠죠.
비척거리다가 다시 취직을 한 곳에서도 제가 더 일을 잘해서 절 더 선호하는 고객이 많아지고 또 그걸로 실적을 잃기 시작하자
네, 서서히 식사, 간식, 일하는 것 하나하나 꼬투리 잡기 시작하더니(지금 생각하면 너무 사소한데 어떻게 죽일 놈으로 만든 건지 웃음이 납니다)
연봉협상할 때 사장이 휴일까지 무급으로 일하게 하려 해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가
반란분자로 확대 되어... 권고사직 처리됐습니다.
이 후에 퇴직급여받으면서 쉬고 있을 때 할머니가 아프게 되셨어요.
중환자실에서 한달을 치료하고 병실을 옮기셨을 정도라 정말 심각하셨구요.
그런데 정작 자식들은 모두 바쁘대요.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운 손자들도 못하겠대요.
네.. 그래서 놀고있는(?) 제가 맡게되었습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라서 교대간호는 불가능했고 제가 24시간 상주해서 간호를 했어요.
대소변 받는 건 기본이고 석션에 모든 케어를 다 해드렸어야 했는데 좀 의식이 돌아오시곤 섬망이 생기셔서 폭력을 휘두르셨습니다.
환복시키다 맞고 기저귀 갈다가 차이고 대변은 온갖 군대에 다 뿌려지고, 치료 때문에 이동할 때는 너무 폭력적이셔서 손발을 묶고 이동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가끔 가족면회로 자식이 찾아올 때 할머니는 폭력성이 1도 없이 유순한 분이 되셨습니다.
몇 달을 이렇게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자고 밤에 발악하실 때 맞으며 어르고 달랬어요.
보호자식은 비싸다고 제 식사는 알아서 해결해야 했구요.
정말 지옥같았습니다.
사실 조부모님 두 분 다 절 그닥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이상하게 많이 찾아 뵙고 많이 일하고 했던 기억이 있으셨는지 할아버지도 치매가 심해져 있을 때 손주들 이름 중 제 이름만 아시더라구요.
참 이상하죠?
몸은 아직 불편해 요양병원에 전적 케어 받고 계시지만 많이 좋아지셔서 정신연령은 낮으시지만 자식들 다른 손주들 면회가면 엄청 뭐 주려고 하고 좋아하시는데 전 그냥 없는사람 취급을... 웃프네요😃
일련의 일들 바탕의 제 가정환경도 남다릅니다.
친구들이 제 사연들으면 어떻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냐고 할 정도입니다.
이래저래 마음에 멍드는 경험이 많았다보니까 많이 힘들어하다 이제 좀 정신차리고 연기가 아니라 진짜 웃을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구직의 난이도는 이거 뭐.. 보스급이네요. 하하.
희망고문 당하듯 하나의 면접을 앞 둔 상태입니다.
이제 뭘 해야할지 주변에서 저에게 아주 뚜렷하게 요구하는데 이게 맞나 싶어요.
나이를 먹어가고 혼자 사는게 편하지만 혼자 외로운게 두렵게 되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는 엄청나게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자살기도도 해서 제 코가 석자인데 매일 걱정하며 연락하고 희망과 밝은 말들을 해줍니다.
항상 제 진짜 모습을 감추는게 습관이 되버렸지만 아직까지 저의 상처 위에 딱지가 앉거나 굳은살이 생기 않네요.
저녁식사 하는 가족과 영화 보러 같이 갈 부모님, 아침에 일어나서 기계적으로 준비하고 출근 하는 직장, 뒷담하면서 카톡 할 친구. 그게 너무 가지고 싶습니다.
적다보니 길어졌군요.
누구나 저 마다의 사연과 아픔이 있지만 지금 전 제가 제일 불쌍해요.
평범해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