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냔 전에도 연유는 있었어요 친구 조카가 혼잣말을 영어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7세 고시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영어 학원 시험을 치르고, 몇 곳 되지 않는 상위권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수개월간 대비하는 현실. 누군가는 “그게 다 부모의 욕심”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아동 학대”라고 분노한다.
당사자인 부모들 중 누구도, 처음부터 아이를 고시생으로 키우고 싶어하지 않았을 거다. 그보다는 “이 정도는 시켜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압박, “안 시키면 내가 무책임한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먼저일 것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결국 학원으로 밀어넣는다. 공부가 목적이라기보다, 돌봄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은 아이의 돌봄과 생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퇴사를 택하는 순간, 경제적 불안이 아이를 더 위협하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부모 개인의 선택이나 도덕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사교육이 만연한 이유는, 공교육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돌봄이 학원에 의해 대체되는 이유는, 사회가 그 기능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교육이라는 전쟁터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게 아니라, 사회가 부모를 떠밀고 있는 건 아닐까.
‘7세 고시’ 현상은 지금의 교육 시스템과 돌봄 구조, 그리고 무한 경쟁이 정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가 함께 만든 결과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구조는 건드리지 않은 채, 아이의 손을 끌고 뛰는 부모만 탓하고 있다.
물론 부모로서 해야 할 고민은 있다. 우리 아이가 지금 받고 있는 교육이 진짜 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선택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그 고민은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눠야 한다. 부모 혼자만의 몫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
“왜 아이들에게 고시를 강요하느냐”고 묻기 전에, “왜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고시를 요구하게 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4세든 7세든, 더 낮은 연령의 ‘고시’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