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의 추억이 사라지는 시대
"붕어빵 사러 나왔는데 현금이 없네." 한때 겨울철 일상을 그려낸 이 유행어가 이제는 진짜 현실이 되었다. 노점상마저 QR코드 결제를 받는 시대, 우리는 정말로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현금 결제 비중은 21.6%로, 2015년 38.8%에서 거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사실상 지갑이 필요없어진 시대다.
디지털 결제의 확산은 분명 많은 장점을 가져다준다. 빠른 결제, 소비 내역 관리의 편의성, 정부 정책의 효율성 증대까지. 하지만 이 모든 편리함은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있으며,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고령자, 신용등급이 낮아 카드 발급이 제한된 저소득층, 복잡한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이해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현금 없는 사회는 또 다른 벽이 되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지 못하는 상황이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닌 사회적 차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디지털 격차에 의한 금융 소외 현상이다. 노년층의 경우 평생 현금을 사용해온 습관을 단시간에 바꾸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복잡한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학습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경제적 취약계층이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렵고, 체크카드 사용을 위한 은행 계좌조차 부족한 이들에게 현금은 유일한 결제 수단일 수 있다. 이들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에서 배제된다면, 사회통합은 물론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ATM이 25% 가까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현금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현금이 필요한 계층은 점점 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전자결제 시스템이 무력화될 수 있고, 이때 현금은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북유럽의 탈현금화 선진국들도 이런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 스웨덴은 대형 은행의 현금 취급 의무화 법안을 시행하고, 미국 일부 주는 현금결제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 자체를 막을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모든 구성원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현금 사용권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장이 필요하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업종이나 공공서비스에서는 현금결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동시에 디지털 결제 시스템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확대해 디지털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또한 ATM 접근성을 보장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한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술 발전의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현금 없는 사회는 분명 시대의 흐름이다. 하지만 이 변화가 일부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소외를 당연시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붕어빵을 사기 위해 현금을 준비하던 시절의 향수를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붕어빵을 사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살 수 있는 사회는 만들어가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속도만큼이나 포용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