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님들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노키즈존의 확산과 노키즈존에 대한 찬성의 물결은 한국 사회가 아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은 '관리되어야 할 존재', '소음을 내는 존재', '다른 사람들의 평온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의 노키즈존 확산은 더욱 아이러니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초로 합계출산율 0명대를 기록하며 출산율 최하위 국가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는 단순히 통계적 수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사회에서 동시에 태어난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아이의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사회적 문제로 치부되면서, 부모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카페나 식당을 선택할 때 '아이 출입 가능 여부'를 먼저 검색하는 것이 당연해진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노키즈존 찬성론자들은 종종 '무책임한 부모들' 때문에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아이를 방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모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현주의 지적처럼, 어른들 사이에서도 매너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30대 남성 출입 금지', '20대 여성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있다면 우리는 즉시 차별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노키즈존'이라는 표현에는 이상하게도 관대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임현주가 식당에서 만난 어머님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공동체 문화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은 동네 전체의 관심사였다. 이웃집 아이가 울면 함께 달래주고, 잘못하면 함께 훈육했다. 아이들의 성장은 개별 가정의 책임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런 따뜻함은 사라지고, 대신 '내 평온을 해치는 존재'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리 잡았다.
한국이 극단적 저출산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출산 장려금을 늘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이 환영받고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키즈존을 무조건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꼭 필요한 곳들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조용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위해 아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대신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카페에서 아이가 조금 시끄럽더라도 미소로 바라봐주고, 식당에서 아이가 울면 함께 달래주는 따뜻한 시선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들을 배제하는 사회는 결국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사회다.
지금 우리가 키우는 아이들이 바로 이 사회의 미래다. 이들이 환영받고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라야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노키즈존이 아니라 '키즈 웰컴존'이 더 많은 사회, 아이의 웃음소리가 소음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로 들리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작은 손님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미래를 마련하는 일이다.